“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이국종 교수, 그의 뚝심이 중환자를 살린 눈물나는 사연은?

SBS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프로그램에서는 2011년 1월 소말리아 인근 아덴만 해상에서 발생한 사건인 ‘아덴만 여명작전’을 다루었다. 이 작전에서 대한민국 해군 청해부대는 삼호주얼리호 선원 21명을 해적으로부터 구출했다. 당시 해적들은 석해균 선장에게 6발의 총을 발사하여 그를 부상시켰다.

외과의사 이국종 교수가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된 선장을 살리기 위해…

외과의사 이국종 교수가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된 선장을 살리기 위해 대여비 4억4000만원의 에어 앰뷸런스 보증을 선언한 이유에 대해 밝혔습니다.

SBS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프로그램에서는 2011년 1월 소말리아 인근 아덴만 해상에서 발생한 사건인 ‘아덴만 여명작전’을 다루었습니다. 이 작전에서 대한민국 해군 청해부대는 삼호주얼리호 선원 21명을 해적으로부터 구출했습니다.

당시 해적들은 석해균 선장에게 6발의 총을 발사하여 그를 부상시켰습니다. 김규환 대위는 석 선장을 즉시 오만의 병원으로 이송하고, 남은 해적을 소탕했습니다.

오만 병원으로 파견된 이국종 교수는 석 선장의 상태를 설명하며 “온몸이 벽돌 같았다. 관통 상해로 인해 내장에서 오염물이 배출되면 몸이 부패될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교수는 “가망이 없는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도전해보자는 생각으로 석 선장을 한국으로 옮기기로 결정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이국종 교수는 국내에서 총상 부위를 추적하고 해부학적 치료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전문가로 평가받았습니다.

하지만 석 선장을 한국으로 이송하기 위해서는 ‘에어 앰뷸런스’가 필요했습니다. 스위스에 한 대가 남아있는 에어 앰뷸런스를 대여하기 위해서는 4억4000만원의 보증금이 필요했습니다.

보통은 국가기관의 보증이 있어야만 에어 앰뷸런스를 대여할 수 있었지만, 외교부는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았고, 이국종 교수는 개인적으로 자신의 이름으로 에어 앰뷸런스를 대여했습니다.

이국종 교수는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당시 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냥 그렇게 왔으니까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석해균 선장이 잘못되면 제 자신도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라며 당시의 상황을 회상했습니다.

한국에서 3차 수술을 받은 석 선장은 5일 후 의식을 회복했으며, 9개월 후에는 두 발로 걸어서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이국종 교수는 “저는 목숨을 건 것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최영함 승조원들이 목숨을 걸었습니다. 지금까지 10년이 지났지만 그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가 버티는 가장 큰 힘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사람들 덕분에 버텨나간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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